덕수궁을 방문하는 것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과도 같습니다. 각 건물마다 간직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덕수궁의 조용한 경내를 거닐며, 그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직접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덕수궁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덕수궁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이 아닌, 한국 역사 속 깊은 이야기와 숨결을 간직한 곳입니다. 덕수궁의 역사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왕궁이 불타버린 아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잿더미 위에서 새롭게 행궁으로 거듭났습니다.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 곳은, 역사의 풍파 속에서 여러 번의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고종 황제 시절, 덕수궁은 다시 왕궁으로의 위상을 되찾았고,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며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궁은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에 의해 양위를 강요당하고, 덕수궁 함녕전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덕수궁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근대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용시간
일반 9시-21시 (입장마감 20시)
석조전 9시30분-17시30분 (마지막 해설 16시30분, 인터넷 사전예약제)
돈덕전 9시-17시30분 (입장마감 17시)
중명전 9시30분-17시30분 (입장마감 17시)
휴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그 다음 첫번째 비공휴일
입장료
개인 1,000원
단체(10인 이상) 800
미술관 관람권은 별도 구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
덕수궁 주요 건축물
덕수궁에는 여러 역사적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대안문이라 불렸으며, 현재는 그 웅장한 모습을 통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광명문과 석조전 등은 덕수궁의 주요 건축물로,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석조전은 대한제국 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외관과 로코코풍의 내부 장식이 돋보입니다.
함녕전은 고종 황제가 거처하던 건물로, 이곳에서 그의 비운의 생애가 마감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궁중 생활상을 재현해 놓아 방문객들에게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중화전과 중명전은 각각 대한제국의 정전과 황실도서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덕수궁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더해줍니다.
대한문 : 대한문은 현재 덕수궁의 정문이다. 이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고, 궁궐의 동문이었다. 대안문은 1906년에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판 글씨는 당시 한성부 판윤을 지냈던 남정철이 썼다.
광명문 : 이 문은 왕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으로 광무 8년(1904)에 큰불이 나서 타 버린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1938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정동에 있던 흥천사(興天寺)의 범종과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자격루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같이 옮겨 세웠다.
석조전 : 대한제국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광무 4년(1900)에 착공하여 융희 3년(1909)에 준공한 석조 건물로,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정면에 있는 기둥의 윗부분은 이오니아식으로 처리하고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하였다. 전체는 3층인데 1층은 접견 장소로, 반지하층은 시종인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었고, 2층에는 황제가 거처하였다.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국립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 : 보물로 지정된 함녕전은 1897년 건축하여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건물로,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같은 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이 함녕전에서 돌아가셨다. 그 후 비어 있던 이곳에 당시에 사용하던 가구, 서화, 집기 등을 배치하여 100여년 전의 궁중 생활상을 새롭게 재현하였다.
중화전 :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전으로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의 근대 국가 건설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정전 안에서 어좌(御座) 바로 위의 닫집을 보면 용을 한 쌍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전 천정의 용과 같은 문양으로 덕수궁이 대한제국 황제의 황궁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중화전은 1902년에 중층으로 건립되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 단층으로 중건된 것이다.
중명전 : 중명전(重明殿)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Seredin Sabatin)의 설계로 1897년부터 1901년에 걸쳐 건립된 황실도서관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서양식 건물로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렀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