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와 제림은 충북 제천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꼭 들러봐야 할 명소로, 자연과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제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의림지와 제림에 꼭 한번 방문해 보세요!
의림지와 제림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에 위치한 한국의 오래된 저수지로, 그 역사와 아름다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저수지는 신라 진흥왕 시기의 악성 우륵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후에 현감 박의림에 의해 더욱 견고하게 재건되었습니다.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지로 33
휴무일 : 연중무휴 (용추폭포 및 분수는 매주 월요일 휴무)
주차 : 주차가능
입장료 : 무료
보조견동반 : 동반가능
호수로서의 의림지는 그 자체로 충북 제천의 자랑입니다. 호반 둘레 1.8km에 이르는 이 저수지는 만수면적 151,470㎡, 저수량 6,611,891㎡에 달하며, 수심은 8~13m에 이릅니다. 약 289.4 정보의 농지에 물을 공급하며,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 시설 중 하나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시대 : 고대/초기국가
문화재 지정 : 충청북도 시도기념물 제11호
건립시기 : 신라 진흥왕 연간
성격 : 저수지
유형 : 유적
면적 : 호수면적 15만 1470㎡, 저수량 661만 1891㎥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분야 : 경제·산업/산업
이곳은 단순히 농업적 가치만을 지닌 곳이 아닙니다. 의림지와 그 주변 지역인 제림은 제천 지방의 주요 경승지로, 여러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순조 7년(1807년)에 세워진 영호정,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는 이 지역의 역사적 중요성을 대변하며, 수백 년 된 소나무와 수양버들, 그리고 30m 높이의 자연폭포는 의림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의림지와 제림을 방문하는 것은 충북 제천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듯, 이곳에서는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감상해보세요.
의림지에 얽힌 전설
(출처 : 제천시)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잣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 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술도 또한 사나웠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 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 바가지 퍼다가 스님을 뒤쫓아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독이 났으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뒤 광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 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 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것이었다.